시저라는 이름의 고릴라. 검은발톱단의 보스로, 교도소 전체의 지하 금융을 장악하고 있다. 그는 힘으로 싸우기보다는 치밀한 계산으로 상대를 조종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 교도소에서 그 누구보다도 그를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시저라는 이름은 물론 본명이 아니다. 찰스, 스티븐, 모리스, 코바 등... 그동안 사용한 이름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이제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시저는 어린 시절부터 글자에 관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6살 때부터 아버지의 필체를 흉내 내 학교에 거짓 결석계를 내기도 했고, 때로는 선생님의 필체를 흉내 내 부모님께 「교재비」를 청구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시저는 자금난에 빠져 파산 직전이던 아버지의 회사를 돕기 위해 구의원의 필체를 흉내 내 보증서를 은행에 제출하여 거액의 대출을 받기도 했지만, 이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발각되지 않았다. 재미를 붙인 시저는 마치 금광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되어 수표 위조라는 불법 행위에 뛰어들었다.
신들린 필체 위조 기술 덕분에 시저는 위조 수표를 현금화하여 수백만 달러의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뛰어난 지능을 가진 시저는 이런 사소한 성공에 도취되지 않았다. 그는 그 후 계획적으로 도시의 뒷세계 산업에 자금을 투자했고, 몇 년 후에는 노스포인트에 있는 크고 작은 갱단 조직들의 암묵적인 지배자가 되었다.
갱단에 의해 보호받고 공권력을 매수했던 시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범죄 제국을 구축한 것처럼 보였다. 연방 수사관인 폭스하운드의 조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니는 유명한 정의로운 형사였다. 친인척이 없던 조니는 돈에도 넘어가지 않았고, 갱단의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랜 기간에 걸친 수사관과 범죄자의 신경전이 막을 올렸다. 시저는 부하들의 정보로 조니를 가지고 놀기도 했고, 조니에게 한 수 앞서져 이름을 버리고 도망쳐야 할 때도 있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호각으로 맞섰던 어느 날 밤, 시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콜록, 콜록, 안녕하십니까. 조니입니다.」
이제는 끝인가. 시저의 정체가 드러난 이상, 더 이상 가명을 써서 도망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니는 시저에게 선택지를 제시했다. 패자처럼 꼬리를 말고 해외로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으로 자신과 담판을 지을 것인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이 라이벌을 직접 눈앞에서 꺾고 싶었던 걸까. 시저는 자신답지 않게 조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전의 무대는 옛 공항이었고, 두 사람 모두 약속대로 혼자 모습을 드러냈다. 몇 발의 총성이 울린 후, 시저는 수갑이 채워졌고 조니도 중상을 입었다. 두 사람 모두 패배했지만, 동시에 승리자이기도 했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결말이었다.